조선을 강제합병한 일제는 1919년 평양과 진남포에 제분공장을 설립한데 이어 1922년에는 평양에 제당공장을 건설했다.
이후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 제빵공장이 전국적으로 들어서기 시작됐다.
더불어 사이다와 우유가 등장했으며, 왜간장으로 불리던 양조간장도 조선에 유통되기 시작했으나 이들 제품은 조선 거주 일본인과 군인들을 위한 것으로 조선민중들은 극심한 수탈 속에 비참한 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 강점기의 가공식품
우리나라에 근대적 식품 기업이 탄생한 것은 해방 이후였다. 1945년 해태제과와 영일당 (크라운제과의 전신)이 원조 밀가루를 이용해 과자와 빵을 생산했고 조일산업은 동해안의 수산물을 통조림으로 제품화하였다.
전후 등장한 제분공장
1965년 조일산업 통조림 공장의 모습
50년대 제분 공장
1946년에는 삼시 醬油(샘표식품의 전신)이 장류 시판에 들어갔으며 서울우유협동조합은 1948년부터 우유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렵게 기반을 만들었던 식품공업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모든 기반을 잃고 말았다.
국민들은 UN의 구호식량인 밀, 옥수수, 캐러멜로 하루를 견뎌냈다. 전후 재건 과정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밀, 보리, 쌀, 원면, 돈육통조림, 잎담배 등 미국이 제공한 원조식량은 기아와 질병을 해결하는 중요한 자산이되었다.
국내 최초로 우유를 공급한 서울우유협동조합 생산라인
1950년대 원당 창고
유엔한국재건단(UNKRA) 구호품 인수식
1960’s
식품위생법 탄생 (1962. 01. 20)
5.16 정변으로 탄생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2년 구 법령의 대대적인 정비 및 신설작업에 돌입했다.
식품 보건 분야도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 만들어졌던 개별 법령들이 통합되었다.
그 결과 최초의 식품관련 법률인 식품위생법이 1962년 1월 20일 제정되었다.
식품의 품질향상과 안전한 식품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식품위생법의 탄생은 세계 보편적 기준이었던 ‘식품위생'의 개념이 국가 보건정책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국식품산업협회 설립
1960년대 말 우리나라 가공식품업체는 1만 3,000여 개 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95%이상이 가내수공업 형태의 영세기업이었다. 자연히 위생과 품질이 조약한 식품을 유통했고 각종 식품사고를 일으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방 이후 한국 가공식품의 기반을 구축한 10개 기업은 부정·불량식품 근절과 소비자 보호를 실현하기 위해 1969년 10월 7일 한국식품공업협회 (현 한국식품산업협회)를 설립했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이후 ‘식품위생법'에 근거한 법정 단체로 발전했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왔다.
식품위생법 위반 첫 사례
통조림 업계에 메스, 버린 깡통 함부로 되써, 6개사 식품위생법 첫 발동 (관련 : 동아일보 ‘62.5.19)
당시 법 제7조 (유독기구등의 판매, 사용금지, 현행 8조) 적용
식중독 역학조사에 따른 원인규명 첫 사례
안동, 의성 등 경북 지역에서 식중독이 발생하여 6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였다.
가정에서 바다생선인 물치를 조리할 때 사용한 기구와 손이 장염비브리오균에 오염되고, 이를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물김치를 담그면서 교차오염에 의해 식중독으로 발생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보릿고개 견디게 한 라면과 크림빵
‘크림빵’과 ‘식용유‘ 출시
1964년 삼립식품이 출시한 ‘크림빵'은 허기진 배를 달래는 달콤한 한 끼로 사랑받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 삼립식품은 이를 통해 기업 입지를 든든히 구축할 수 있었다.
1966년 동방유량은 대표적인 식품 소재인 ‘대두유’를 출시, 우리나라에 식용유 시대를 열었다. 1969년에는 오뚜기가 ‘분말카레’를 시판하면서 카레의 시대를 예고했다.
라면의 등장 (1963. 09. 15)
1963년 삼양식품공업(현 삼양식품)이 일본 명성식품과 기술제휴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하였다. 생소한 이름과 모양으로 판매가 부진하던 라면은 정부의 ‘혼 · 분식 장려운동'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데다 칼로리가 높아 쌀을 대신할 가공식품으로 인정 받은 것이다.
라면은 1967년 연간 30만 석의 미곡대체효과를 가져왔다.
삼양식품공업 전중윤 사장은 그 공로로 국가보건 행정발전 기여 표창을 수훈하기도 하였다.
최초의 라면 제품들
1970’s
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혼분식장려운동
1970년대 후반 이전까지 쌀 생산량의 부족으로 쌀밥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런 쌀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일제시대부터 국가가 절미운동(節米運動)의 일환으로 혼식과 분식을 강제하는 식생활개선 정책이 시행
국가 주도의 혼분식장려운동으로 한국인의 주식이 쌀과 보리에서 쌀과 밀로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라면, 빵 등 서구화된 음식문화가 형성되게 되었다. 또한 혼분식장려운동과 함께 저곡가 정책이 추진되어서 농촌 경제난이 심화되었고, 1980년대 이후 잉여 쌀 소비 문제가 대두되게 되었으며, 과도한 수입 곡물 의존으로 식량 안보 문제와 농산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국제 식품규격 위원회 (CODEX) 회원국 가입 (‘71)
소비자 건강보호와 식품 교역 시 공정한 무역관행 확보를 위해 FAO / WHO 에서 공동으로 설립한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가입하였다.
CODEX 규격은 국가 간 식품교역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국제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식품안전 기준과 규범을 국제적 수준에 부합되도록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국제식품규격위원회 활동을 통해 국제적 수준의 식품안전 기준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식량 자급화 실현, 다양한 가공식품 등장
‘새우깡’, 죠리퐁, ‘바나나우유’
국민들이 맛있는 간식을 찾기 시작하면서 스낵 제품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혼·분식과 함께 정부가 소비를 적극 권장한 우유 시장에도 신제품이 등장했다.
대일양행(빙그레의 전신)이 출시한 ‘바나나 우유'와 정식품이 출시한 '베지밀'이었다.
'바나나 우유'는 고급스러운 맛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베지밀’은 콩으로 만든 우유로 인식되며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새우깡 변화
바나나 우유 변화
인스턴트 커피 시대
정부는 1960년대까지 커피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커피가 시중에 대량으로 유통되고있었다. 결국 정부는 1968년 외화유출 방지와 세수확보를 위해 동서식품의 설립을 허가하였다.
동서식품은 1970년 미국 제너럴 푸즈사와 기술 제휴를 통해 맥심(커피)과 맥스웰 하우스를 출시하였다. 이 결과 집집마다 커피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며 다방 문화도 유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서식품은 1976년 봉지 하나에 1회 분량을 섞어 넣은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로써 초간편 인스턴트 커피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커피믹스는 동서식품의 대표제품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76년 동서식품 최초의 커피믹스
1980’s
식품위법 1차 전부 개정 (1986. 05. 10)
정부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1962년 제정 이후 최초로 식품위생법을 전면 개정하였다.
식품기업과 제조자들의 자가품질검사 의무가 신설되었으며, 영업자 준수사항을 도입하고, 식품접객업소의 위생등급제와 영업제한 규정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정비를 시행하였다.
또한 식품위생 수준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민간검사기관에도 식품위생검사가 가능하도록 하고 식품진흥기금을 설치하는 등 식품안전 기술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하였다.
이때부터 품목에 상관없이 보건사회부가 식품안전관리를 주관하게 됨으로써 식품안전 체계 일원화에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졌다.
산업계도 식품안전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에 나서며 한국식품산업협회(당시 : 한국식품공업협회)는 식품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식품위생교육과 식품검사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88올림픽과 컵라면 열풍
88 서울올림픽은 국민들의 소비 증진과 민간 경제 성장에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식품업계 역시 김치를 비롯한 다양한 가공식품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며 새로운 기회를 창조했다.
선수촌 식품 공급을 위해 가공식품의 품질과 위생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한 신제품도 대거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농심 ‘사발면’은 선수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새로운 수출식품으로 발돋움했다.
더불어 스포츠 이온음료와 호상 요쿠르트인 ‘요플레’도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가공식품의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
농심사발면 광고
대량소비시대 진입과 가공식품 세계화
1980년대 우리 경제는 3저 호황과 올림픽 등의 호재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국민들 역시 소득 증대에 따라 육류를 비롯한 선진 가공식품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 롯데햄과 제일제당은 최신 생산설비와 콜드체인(Cold Chain)을 구축하고 고급 햄과 소시지 제품을 출시했다.
이러한 때, 제일 제당이 1987년 출시한 ‘스팸’은 햄을 반찬의 개념으로 올려놓으며 명절 선물세트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원양어업으로 참치를 수출하던 동원산업도 1982년 참치 캔 제품을 출시했다.
1981년 오뚜기는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인 ‘3분 카레'를 출시하며 즉석 식품 시장을 선도해 나갔다.
햄과 소시지는 도시락과 김밥 재료는 물론 성인들의 술안주로도 폭 넓게 인기를 얻었다.
레토르트 식품 시대를 알린 오뚜기 '3분 카레'
1982년 탄생한 최초의 동원참치
양념치킨과 프랜차이즈
1980년대 돌풍을 일으킨 또 다른 식품은 배달 치킨이었다.
양계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페리카나’, ‘멕시칸’, ‘처갓집’ 같은 토종 프랜차이즈 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식품 기업들은 프랜차이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9년 롯데리아 소공점이 최초로 문을 열었고 1984년에는 두산그룹이 KFC를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다.
이후 피자헛과 맥도날드가 차례로 상륙하면서 프랜차이즈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발족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미국 FDA와 같은 권위 있는 기관으로 격상시키기로 하고 1998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발족하였다.
본부와 국립독성연구소와 6개 지방청을 소속기관으로 하는 식약청은 인력 776명, 예산 333억원으로 출범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 (CODEX)가 요구하는 위생기준을 확립했으며 식품안전 관리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되었다.
HACCP 제도 도입 (‘95)
19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본부를 미국 FDA와 같은 권위 있는 기관으로 격상시키기로 하고 1998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발족하였다.
본부와 국립독성연구소와 6개 지방청을 소속기관으로 하는 식약청은 인력 776명, 예산 333억원으로 출범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 (CODEX)가 요구하는 위생기준을 확립했으며 식품안전 관리체계도 획기적으로 개선하게 되었다.
1990’s
세계화 시대의 식품산업
전통 식품의 상품화, ‘햇반’과 ‘비락식혜'
쌀 시장 개방이 사회적 이슈가 된 1990년대 초반, ‘신토불이’라는 개념이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식품업계 역시 고유의 식재료를 제품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기존에 없던 제품들이 탄생했다.
먼저 명절에 집에서만 먹던 식혜가 가공식품으로 출시되었다. ‘비락식혜’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신토불이 음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제일제당은 1996년 즉석 밥의 원조인 ‘햇반’을 출시했다. 최첨단 HACCP 공정을 통해 탄생된 ‘햇반’은 초기에 고전했지만 2000년대 이후 시장을 확대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햇반 변천사
비락식혜 변천사
2000’s
식품안전의 날(5. 14) 지정 (2002)
식약청은 식품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고, 식품 관련 종사자들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식품안전의 날(5.14)’을 지정하고, 국민, 소비자단체, 학계, 업계 등이 참여하는 식품안전의 날 행사를 기획하여 소비자 중심의 식품안전 소통행사로 발전해 오고있다.
식약청, 소비자 중심의 식품안전체계 구축
2000년대 이후 식품의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면서 식품안전정책의 패러다임도 소비자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식품안전 법령 체계도 강화해 나갔다.
2002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데 이어 2008년도에는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영양을 고루 갖춘 식품을 제공하기 위한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국민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식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식품안전정책을 수립하는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 · 제도적 식품안전체계를 확고히 구축하였다.
웰빙(Well-Being)열풍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우리나라는 연간 10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면서 4%대의 경제성장을 이어갔다.
식품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화두였던 웰빙(Well-Being) 제품과 유기농 식품이 대세로 떠올랐다. 유기농식품은 비싸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선택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1980년대 효소류 생산으로 시작한 풀무원은 업계 최초로 두부와 콩나물 등을 가공식품으로 출시했으며 2000년대 진입과 함께 점유율이 크게 확대되었다.
풀무원 도안공장
90년대 초반 풀무원 제품
90년대 후반 풀무원 제품
풀무원의 약진은 CJ제일제당, 대상 등 주요 식품 기업들이 냉장 신선식품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즉석 식품의 다양화와 고급화
2000년대 진입 후 ‘햇반’의 인기가 폭발하면서 농심, 오뚜기, 동원 등 다양한 기업이 즉석밥을 출시했다. 이후 면, 수프, 죽 등 다양한 즉석조리식품이 경쟁적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햇반’은 가장 혁신적인 가공식품으로 인식되었으며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까지 사랑받게 되었다.
간식으로 인식되던 가정간편식(HMR)은 2010년 이후 유통업체 등 다양한 공급자가 출현하며 한 끼 식사로 진화하였다. 더불어 냉동 만두, 카레, 피자, 핫도그, 떡볶이, 양념육 등 다양한 종류로 발전하면서 가공식품 분야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2010’s
일원화된 식품안전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출범
2013년 3월, 정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국무총리실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승격시켰다. 생산부터 제조, 유통, 소비단계까지 일원화된 식품안전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로 식품안전을 통합 · 관리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을 갖추게 되었다.
식약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수입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수입식품안전관리 특별법을 제정하였으며, 어린이 식생활 안전정책은 물론 나트륨 및 트랜스 지방 저감화 캠페인 등식품안전을 넘어 국민 건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있다.
지구온난화, 4차 산업혁명, 유전자가위 등 신기술의 개발, 저출산 ·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 등 미래 식품안전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선제적인 대응을 위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식품산업 세계화를 향한 도전(HMR)
2010년 이후 혼밥 · 혼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가정간편식 시장이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마트는 2013년 자체 브랜드를 론칭해 국, 탕, 찌개등의 한식은 물론 중국, 태국 요리까지 간편식으로 출시하였다.
2016년부터는 유명 셰프나 맛집과의 협업을 통한 브랜드가 등장했고 안주와 피자류까지 영역이 확대되었다.
특히, 편의점 도시락이 큰 인기를 끌면서 즉석식품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반조리 식품인 밀키트(Meal kit)제품군도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